
- 토도이즈/토도데쿠
- 배우 토도로키 × 스타일리스트 미도리야
“뭐? 이번 주 금요일이 미도리야 씨 생일이라고?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축하해, 축하해!”
“아하하 감사합니다….”
매니저가 등을 팡팡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자, 미도리야가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주목받는 게 싫어서 조용히 가서 말씀드린 건데, 목소리가 특출나게 큰 사람이라는 걸 간과했다. 이야, 미도리야 씨 생일인 걸 왜 몰랐지? 이참에 스탭들 생일이나 다 적어놓을 수 있게 달력 하나 장만해야겠어. 큰 소리로 말을 해대는 통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생겼다.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던 A씨도 미도리야 씨, 축하해. 한마디 거들었다. 네에, 감사해요…. 대꾸하며 괜히 토도로키의 눈치를 한번 쓱 봤다. 다행히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들리지 않는 건지, 토도로키는 머리 손질을 받으며 대본만 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한다고?”
“아, 넵. 금요일에 일정 끝나고 있는 회식에 빠져도 되나 싶어서요.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보자고 해서.”
“그럼 그럼. 생일은 역시 친구들과 함께 보내야지. 오랜만에 동창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와.”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순간 거울을 통해 토도로키하고 눈이 마주쳤다. 보통 눈이 마주치면 먼저 바라보고 있던 쪽이 피하기 마련이건만, 꿋꿋이 저를 바라보고 있자 민망해진 미도리야가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를 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토도로키도 가볍게 인사를 하곤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착장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체크가 들어갔다. 꼼꼼히 구석구석 살펴보던 미도리야의 눈에 옷깃이 제대로 펴지지 않은 게 보였다. 서둘러 구김 없이 옷깃을 빳빳이 펴고 있는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들은 들리지 않을만한 크기였다.
“이번 주 금요일이 생일이라고요?”
“네?”
못 들은 줄 알았는데 들은 모양이었다. 깜짝 놀라서 올려다봤다가 빤히 저를 응시하는 눈동자에 슬그머니 시선을 내린 미도리야가 서둘러 대답을 했다.
“들으셨어요?”
“매니저 형 목소리가 워낙 크잖아요.”
“하하….”
그건 그렇죠. 미도리야가 격하게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옷깃을 마저 정리하고 어깨선을 따라 옷을 깔끔하게 펴는데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던 건지 토도로키가 입을 열었다.
“뭐 갖고 싶은 거 없어요?”
“갖고 싶은 거요?”
“선물 드리고 싶어서요.”
선물이라니. 그것도 그 토도로키 쇼토에게서의. 미도리야가 화들짝 놀라 옷에서 손을 떼고 토도로키를 바라보았다. 아, 아유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미도리야가 고개를 젓는 것도 모자라 양 손으로 손사래를 치는 걸 바라보던 토도로키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크게 돌아오는 반응에 다소 놀란 모양이었다.
“아니에요, 이제 한 식구인데. 부담스러우면 환영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줘요.”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다. 미도리야가 끙 앓으며 목 뒤를 매만졌다. 떠오르는 샛별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토도로키 쇼토. 데뷔한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인 배우였으나 연기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 연기에 단숨에 믿고 보는 배우 반열로 오른 다크호스였다. 인성도 좋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엄청 잘해준다는 미담이 떠돌던데, 아무래도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다. 담당 스타일리스트로 합류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에게도 이렇게 신경을 써 주는 거 보면. 어쩐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배우님. 이제 나오셔야 해요.”
똑똑 소리가 들리더니 방송 스태프가 토도로키를 불렀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토도로키가 지금껏 들고 있던 대본을 미도리야에게 건네주었다.
“이것 좀 차에 갖다 놔 줄래요?”
“네, 그럴게요.”
‘나의 히어로.’ 토도로키가 주연으로 출연할 드라마의 대본이었다. 듣기론 극 중에서 히어로과의 수석 입학생이면서 차갑고 날카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고 하는데, 토도로키의 이미지와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며 벌써부터 대중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었다. 토도로키가 지금껏 보고 있던 건 바로 그 드라마의 5회차 대본이었다. 오늘 일정은 단순한 예능 촬영인데도 짬짬이 대본을 읽는다는 게 정말 성실하고 대단하다. 그 성실함을 증명하듯이 얼마나 들여다봤으면 엊그제 새로 뽑은 대본이 너덜너덜하다. 미도리야가 새삼스레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토도로키가 나가려다 말고 몸을 빙글 돌렸다.
“어쨌든 이번 주 금요일이면 앞으로 이틀 남았네요. 갖고 싶은 거 생각나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핸드폰 번호는 매니저 형이 알려드렸죠?”
“네, 네에.”
“그리고 말 놓으라니까요. 저보다 형이잖아요.”
“그, 그건 차차…!”
편하신 대로 하세요. 살며시 미소를 짓던 토도로키가 갑자기 훅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며 몸을 뒤로 빼기가 무색하게 부쩍 다가온 얼굴이 바로 제 앞에 있었다. 배, 배우님? 당황해서 어버버하고 있는 사이에 뺨 인근을 맴돌던 손길이 머리칼에 살짝 닿았다 떨어진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있어서요.”
“아, 네에….”
먼저 나가 있을게요. 그러곤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자기 더워진 실내 공기에 정신없이 부채질을 하다가 거울을 봤다. 우스울 만큼 새빨개져 있는 얼굴에 울상이 지어졌다. 정말 여러 의미로 직진인 사람이다. 페이스에 정신없이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배우는 배우구나. 저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려 웃는데, 그냥 화보를 보는 줄 알았다. 지척에서 마주하고 있던 눈동자를 되새기니 괜히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멍하니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있던 미도리야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정신 차리자, 미도리야 이즈쿠! 스스로에게 타박을 한 미도리야가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곤 스탭을 따라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촬영 틈틈이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진 않는지, 화장이 지워지진 않는지 A씨와 함께 유의해서 주시해야만 했다. 우선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얼른 차에 들려 대본을 갖다 놓고 오자. 미도리야가 바삐 발을 놀렸다. 할 일이 많았다.
Special
w. Lriel
“수고했어, 토도로키 씨. 예능도 별로 어렵지 않지?”
“생각보다 괜찮네요.”
옆자리에 앉아 만담을 늘어놓던 선배 연예인이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자 토도로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토도로키는 첫 예능치고 생각보다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 갔다. 이주 후쯤에 해당 편이 방송된다면, 평소 이미지가 과묵하고 침착한 터라 예능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기존의 편견이 깨질 것이다. 그럼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게 될 거고, 여기저기서 방송 섭외는 물론 작품에서도 다양한 스타일의 배역이 많이 들어올 테다. 여러모로 성공적인 촬영이었다.
“이제 집에 가서 쉬어야지?”
“네, 대본 조금만 더 읽어보다가 쉬려고요.”
“아이고. 엄청 열심히 하네.”
토도로키의 직업정신에 혀를 내두른 선배가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며 등을 토닥였다. 그래, 다음 주 수목 10시? 기억해둘게. 본방사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던 선배가 돌아가고 토도로키가 인사를 하는 것까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미도리야가 감탄을 흘렸다. 맨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녹화본만 보다가 촬영 비하인드 컷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게 되니 신기하기만 했다.
“뭐해, 미도리야 씨. 갈 준비 안 해?”
“네? 네! 해야죠! 네!”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 미도리야가 이상해 보였던 건지 매니저가 어깨를 톡 건드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미도리야가 화들짝 놀라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신기하지? 그럴 때지, 그럴 때야. 옆에서 매니저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놀리자 미도리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만 놀려, 당황해하잖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토도로키가 매니저를 만류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등을 펴고 입을 비쭉 내밀었다.
“야, 뉴페이스라고 챙겨주는 거야? 서럽다, 서러워.”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서 다들 쉬셔야지. 내일 아침부터 일정 있어서 빡세잖아.”
생각보다 촬영 시간이 늦어져서 벌써 새벽 1시가 다 되는 시간이라 귀가하면 2시를 훌쩍 넘길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당장 오전 9시부터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오전부터 시작되는 드라마 촬영에 이어 저녁에 화보 촬영까지. 모든 일정을 무탈하게 소화하려면 일정량의 휴식은 필수였다.
“아유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이런 일정 한두 번 소화해보냐. 오늘 좀 피곤해도 내일 일어나면 멀쩡해!”
매니저 형이 양손을 허리에 짚으며 호쾌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너무도 당당하게 말한다 했다. 괜찮다며 토도로키와 저를 포함해 방향이 대여섯 명쯤 되는 스탭들을 일일이 다 차로 데려다주더니.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던 형은 다음날이 되자 걸어 다니는 시체 같은 몰골을 해서 나타났다.
“매, 매니저님?!”
“아니… 너네 데려다주고 집에 가다가 접촉사고가 난 거 있지. 덕분에 합의보고 보험처리하고 집에 들어가니까 4시더라….”
“접촉사고요?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어요?”
“멀쩡해. 아주 멀쩡해. 그러니까 더 억울하다, 야.”
잠을 자지 못해서 퀭해진 눈으로 목을 돌리던 매니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목소리가 조금 크고 장난기가 많지만 그만큼 현장에서 분위기메이커 담당을 했던 매니저가 비실대자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미도리야가 잠깐 눈 좀 붙이고 오라며 넌지시 말하자, 다른 스탭들도 그러라며 매니저의 등을 떠밀었다.
“그럼 조금만 쉬다 올 테니까,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불러.”
비틀대던 매니저가 차 안으로 쏙 들어가자 그제야 한시름 놓은 스탭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때마침 촬영하고 있던 장면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더위에 무너진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는 사이 뭔가 할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던 미도리야가 생수병 하나를 들고 토도로키에게 갔다. 원래는 매니저가 하던 일이었지만, 지금 자리에 없는 만큼 손이 빈 사람이 대신 그의 자리를 메꿔야 했다.
“더우실 텐데 물 좀 드세요.”
“아, 고마워요. 형은요?”
“피곤하신 것 같아서 잠시 쉬시라고 들여보냈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토도로키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미도리야를 빤히 쳐다봤다. 꼭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쳐다보는 표정에 미도리야가 눈을 깜박이다가 또르르 시선을 피했다.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싶어서 긴장이 됐다. 금방이라도 뭔가 말을 할 것 같던 토도로키는 계속 입을 열지 않았다. 윙윙, 휴대용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맴도는 게 어색했다. 한참 동안 미도리야를 바라보고만 있던 토도로키는 수정화장이 끝나고 스탭들이 도구를 정리하러 가서 둘만 남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 봤어요?”
“뭐, 뭘요?”
“선물. 이제 내일이잖아요.”
“아, 그게….”
미도리야가 말끝을 흐렸다. 맞다, 생각해 보라고 했었지. 사실 어제도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절 잠을 자는 통에 잊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던 미도리야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저는 정말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아무거나요?”
“네! 배우님이 주시는 건데 뭐든 감사하죠!”
말을 얼버무리곤 조심히 토도로키의 눈치를 보았다. 차마 생각하지 못해서 선택권을 떠넘겼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무려 토도로키가 주는 선물인데. 받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는 건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정말 뭐든지 괜찮아요?”
“네, 정말로요.”
“내가 뭘 줄지도 모르면서?”
“그건….”
당황한 미도리야를 바라보던 토도로키가 휴대용 선풍기의 방향을 미도리야 쪽으로 돌렸다. 훅 끼치는 시원한 바람에 눈이 매워서 살짝 눈을 찡그렸다.
“좋아요. 그럼 제가 주고 싶은 걸로 줄게요.”
“네, 네.”
때맞춰 다음 씬 촬영을 들어간다며 감독이 배우들을 모았다. 토도로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풍기를 훌쩍 넘겨준다. 좀 쐬고 있어요. 덥잖아요. 그러곤 카메라 앞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미도리야가 선풍기를 꾸욱 쥐었다.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 때문인지 얼굴이 간지러웠다.
촬영은 머지않아 끝이 났다. 35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린 배우들 덕분인지 그 흔한 NG도 얼마 나오지 않아 진행이 빨리빨리 이루어졌고, 결국 예상보다 일찍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저녁에 예정된 화보 촬영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게 되어서 휴식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른 스탭들과 함께 촬영장을 정리하고 차로 돌아오니, 방금 막 깬 모양인지 부스스한 몰골의 매니저가 그들을 반겼다. 뒷자리에 누워있던 매니저가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대여섯 명의 스탭들이 한 명씩 차에 올라탔다. 간이의자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마지막으로 타려고 하다 보니 토도로키 옆자리 밖에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사람이 옆에 앉으면 토도로키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다른 스탭에게 자리를 바꿔 달라고 말할까 고민하던 사이 로드 매니저가 운전석에 올라타서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자리에 앉고 차 문을 닫았다.
아침부터 이어진 스케줄에 다들 지쳐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눈을 붙이고 깨어있는 사람은 운전을 하고 있는 로드 매니저와 매니저, 그리고 자신과 토도로키 뿐이었다. 더군다나 토도로키는 지치지도 않는지 또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말 본업에 충실한 모습에 감탄하며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있던 매니저가 등을 돌려 미도리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미도리야 씨. 오늘 나 대신에 토도로키 이것저것 챙겨줬다며.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다 같이 나눠서 했는걸요.”
“그래도. 신입이라 모르는 것도 많고 더 힘들었을 거 뻔히 보여. 더군다나 엄청 더웠을 텐데.”
“배우님이 선풍기 빌려주셔서 괜찮았어요.”
“토도로키가?”
매니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도리야를 쳐다보더니 몸을 더 돌려서 토도로키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건지 토도로키가 대본을 보다 말고 눈을 들어 매니저를 쳐다본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응.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 해.”
눈썹을 들어 올린 토도로키가 다시 대본에 집중하는 걸 한 번, 미도리야를 한 번 번갈아 보던 매니저가 몸을 바로 해서 등받이에 기댔다. 흐응. 흥미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미도리야는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촬영장에 도착했다. 오늘 있는 촬영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한 UA의류에서 새로 출시되는 신상 의류를 선보이기 위한 화보였다. 젊은 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트랜디하면서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을 모델로 하길 원했다 들었는데, 마침 토도로키가 그들이 원하는 조건에 딱 적합하다고 들었다. UA의류와 협업하는 건 토도로키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자신에게도. 그간 화보집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UA의류의 화보 촬영장에 직접 올 수 있다니 꿈만 같아서 가슴이 설레었지만, 자칫하다간 그런 감정이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실수가 없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오늘 촬영할 의상은 총 여섯 가지. 미도리야가 양 뺨을 착 하고 쳤다. 파이팅, 미도리야 이즈쿠! 기합을 불어넣는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촬영은 쉴 틈 없이 진행됐다. 토도로키는 무리 없이 촬영감독이 원하는 표정이나 자세를 취하며 모든 스탭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토록 칭찬에 인색하다는 감독마저 토도로키 씨는 모델을 해도 성공했을 거라며 입이 마르도록 호평을 했다. 칭찬을 받은 건 토도로키인데 괜히 자신이 뿌듯해지는 마음에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움찔거렸다.
“우리 배우 정말 잘하지?”
“네!”
“근데 미도리야 씨는 오늘따라 파이팅이 넘치네.”
“UA의류 촬영장에 오는 건 처음이라서요.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떨려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잔뜩 들떠 보여서 매니저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근데 토도로키하고 무슨 일 있었어? 분위기가 묘한데.”
“그게요…. 배우님이 생일 선물을 주신다고 하셔서요.”
“…생일 선물?”
“네에… 감사하기도 한데, 저 때문에 괜히 고민하시는 건 아닐까 죄송스러워져서요.”
흐음. 눈을 깜빡이며 미도리야를 바라보고 있던 매니저가 턱을 매만졌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싶던 매니저가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촬영 중인 토도로키를 바라보았다.
“미도리야 씨. 그 선물 받는다는 거 말이야, 그거 나 말곤 아무도 모르지?”
“네? 네. 매니저님한테 처음으로 말씀드린 거예요.”
“그럼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말자. 스탭들 서운해하겠어~”
“네?”
영문 모를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려도 매니저는 싱긋 웃기만 하고 말았다. 매니저가 미도리야의 등을 아프지 않게 팡팡 두드렸다.
“자자 일할 시간이야 스타일리스트 씨. 다음 의상 촬영 들어간다.”
다음 의상으로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가는 토도로키를 가리키자 미도리야가 고개를 휙 돌렸다.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매니저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하고 무슨 얘기 했어요?”
들어가서 이전 의상을 정리하고 있으니 토도로키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미도리야가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다 말고 눈을 또르르 굴렸다. 뭐라 말할지 고민하다가 생일 선물에 관련해서 얘기했다는 건 살짝 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냥 신기해서요. 예전부터 구경하고 싶었던 촬영장이었거든요.”
“그래요?”
“네, 개인적으로 여기 의류 스타일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사람마다 체형도 스타일도 다를 텐데 신기하게 핏이 딱 들어맞는 게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트랜디하기도 하고. 스타일리스트로 진로를 정한 것도 다 UA 패션쇼를 본 이후였거든요. 그러고 보니 배우님 다음 달에 여기 패션쇼도 참여하신다면서요! 와… 진짜 대단하셔요.”
하던 일도 멈추고 재잘재잘 말을 쏟아내는 미도리야에 토도로키가 눈을 크게 뜨며 두어 번 깜박였다. 그제야 제가 너무 떠들었다는 걸 자각한 미도리야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눈치를 봤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이게, 그, 버릇을 고쳐야지 했는데….”
“아니요. 괜찮아요.”
관심 있는 대화 주제가 나왔을 때 흠뻑 빠져들어서 정신없이 떠드는 건 자신의 나쁜 습관이었다. 그걸 토도로키 앞에서 적나라하게 보였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울상을 지으며 자꾸만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잠시 자리를 비웠던 A씨가 들어왔다. 다행히 의상 점검은 다 끝났던 때라 이전 의상을 빠르게 마저 정리한 미도리야가 꾸벅 인사를 하곤 서둘러 대기실에서 벗어났다. 허겁지겁 자리를 뜨는 미도리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토도로키가 뭔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 * *
한참 이어지던 화보 촬영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끝나 다들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결과물은 매우 성공적으로 나와서 만족스러운 촬영이 되었다. 매니저가 수고했다며 토도로키와 다른 스탭들을 격려했다. 그러면서 태워다 줄 테니 어서 다들 차에 타라고 하는 말에 모두 다 극구 반대를 했다.
“아니 오늘 새벽에 사고까지 난 사람을 어떻게 고생시켜요. 그리고 매니저님 집도 여기 근처잖아요. 저흰 지하철을 타든지 택시를 부르든지 알아서 들어갈 테니까 쉬세요.”
“아니 그래도…. 토도로키도 그렇고 미도리야 씨는 집도 먼데.”
“내가 데려다줄게.”
어째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던 매니저가 고개를 돌려 말을 꺼낸 토도로키를 바라보았다.
“네가?”
“어차피 집 방향도 비슷하고. 내가 데려다주고 들어가면 되지. 대신 차는 빌릴게. 내일 돌려줘도 되지?”
“그건 괜찮긴 한데….”
“그럼 됐네. 형은 들어가서 쉬어.”
데려다준다는 말에 얼떨떨하게 토도로키를 바라보고 있던 미도리야가 일단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이 고생했을 매니저가 우선은 편히 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쉬이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던 매니저는 나머지 스탭들이 다들 그러라며 거드는 통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가볼게요.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먼저 멀찍이 걸어가는 토도로키를 쳐다본 미도리야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서둘러 그 뒤를 따라갔다. 잘됐네, 매니저님은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한마디씩 말을 건네며 자리를 뜨는 스탭들을 배웅을 하는 둥 마는 둥, 매니저는 그저 둘이 탄 차가 멀어지는 것만 빤히 쳐다보았다.
“진짜 이상하네.”
다들 느끼지 못한 모양이지만, 토도로키와 몇 년을 같이 일해 온 자신만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토도로키의 행동이 수상했다. 그게 나쁜 쪽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유독 미도리야를 신경 써 준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처음 미도리야가 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그랬다. 기본적으로 다정하긴 하나 까칠함이 베이스로 깔려있는 토도로키가 누구를 그렇게나 신경 써주는 건 처음 봤다. 아까도 남이 자기 물건에 손대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는 아이가 선풍기를 빌려줬다고 하더니만. 생일 선물이라는 건 또 어떻고? 토도로키는 스탭들의 생일 선물을 일일이 챙겨주지 않는다. 선물을 챙겨주다 보면 개개인별로 당연히 물품이 다를 건 자명하고, 그에 따라 형평성이 어긋나게 되면서 편애니 뭐니 혹시 모를 뒷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토도로키는 일찌감치 상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매번 단체 회식을 하자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유독 미도리야에게만 행동이 달랐다. 미도리야에게만. 신입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나.”
불현듯 떠오른 황당한 생각에 매니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심증이라곤 하지만 너무 갔다. 설마 그럴 리가. 피곤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다. 에이 설마. 에이 그럴 리가. 그러면서도 점차 피어오르는 의구심에 웃음소리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니 근데 진짜라면? 토도로키의 저런 행동은 자신에게조차 생소한 행동이었다. 그게 정말로 그런 걸 뜻하는 거라면?
“…이거 조만간 열애설 나는 거 아니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거라고 확신치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엄습했다. 매니저가 저릿한 머리를 짚었다. 오늘 새벽에 난 사고 탓에 정말 머리를 다친 모양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휩싸이는 걸 보면. 매니저가 상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촬영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둘만 차를 타고 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이며 어색한 분위기는 어찌해야 할지 안전벨트를 매기 직전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건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피로에 지친 몸은 의자에 누이자마자 그만 곤히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비몽사몽 깨어보니 시간은 그로부터 50분이나 지나있었다. 그 말인즉슨, 도착하고 나서도 20분을 더 내리 잤다는 말이 되었다. 방금 잠에서 깨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끔뻑끔뻑 시간만 확인하다가 겨우 상황 파악이 된 미도리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어요?”
“죄, 죄, 죄송합니다!”
미도리야가 허겁지겁 사과의 말을 꺼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가장 고생한 당사자가 옆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스타일리스트가, 그것도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졸아 버렸다. 더군다나 도착했는데 깨지도 않아서 졸지에 20분 동안 운전자를 방치해 둔, 한마디로 매너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미안함이 한가득 담겨있는 얼굴로 재차 사과를 하니 토도로키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할 말도 있었고.”
“할 말이요?”
“그 전에 우선.”
토도로키가 몸을 돌려 미도리야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곳에서 보니 색 다른 눈이 더 영롱하게 빛나는 듯하다. 멍하니 눈을 마주하고 있다가 괜히 긴장이 되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토도로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자 눈치를 보던 미도리야가 먼저 슬그머니 운을 뗐다.
“저기… 배우님?”
“그거요.”
“네?”
“배우님 말고 다른 걸로 불러줘요.”
“다른 거요?”
“그, 이름… 이라든지.”
토도로키가 민망한지 코를 매만졌다. 예상치 못한 말에 미도리야는 눈만 끔뻑였다. 이름? 누구의? 배우님의? 어…. 당황해서 말끝을 흐리며 눈을 또르르 굴리는데, 어쩐지 가로등에 비친 토도로키의 귀가 붉어 보였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그래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토도로키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편하게 불러줘요. 성도 괜찮고… 아니면 이름도 괜찮고.”
“…그, 그럼 토도로키 씨로….”
한참 고민하다가 호칭을 정하자 토도로키의 안색이 한결 환해지는 것 같았다. 배우는 웃는 것도 예쁘구나 따위의 생각만 하다가 정신을 차린 미도리야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뭐예요? 미도리야가 물어보자 잠시 머뭇거리던 토도로키가 목을 가다듬곤 말을 이었다.
“생일 선물이요, 어떤 걸로 드릴지 정했거든요.”
“뭔데요?”
물어보는 자신이 더 긴장을 했다. 토도로키 쇼토에게 직접 받는 생일 선물이라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UA의류 좋아한다고 했죠?”
“네? 네.”
“다음 달 UA의류 패션쇼에 같이 가는 건 어떨까 해서요.”
“…….”
“아까 보니까 좋아하는 것 같길래….”
미도리야의 표정이 쨍하고 얼어붙었다. 생각보다 냉한 반응에 토도로키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미도리야의 안색을 살폈다.
“별로예요?”
“…세상에.”
“네?”
“세상에 UA의류 패션쇼요? 정말요? 제가 같이 가도 괜찮은 거예요?”
몸을 바들거리다가 한껏 설레는 표정으로 미도리야가 몸을 앞으로 뻗었다. 부쩍 가까워진 거리에 토도로키가 움찔거리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진짜요? 와 어떡해….”
“마음에 들어요?”
“네! 정말로요! 정말 너무 감사해요. 꼭 한번 가고 싶었거든요.”
다행이네요. 토도로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어요. 사실 뭘 드려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그 말에 미도리야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선택권을 떠맡겨버린 게 생각나 미안해졌다.
“원래는 내일 말할까 했는데.”
“그럼 왜 지금….”
“그냥요. 빨리 말해주고 싶어서. 미도리야 씨가 기뻐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기도 했고.”
“…….”
“그리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거든요.”
“뭘요?”
토도로키가 한 템포를 쉬었다. 말을 하다 말고 자동차 계기판을 흘깃 쳐다보는 모습에 미도리야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디지털시계가 23시 5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와 토도로키를 번갈아 보다가 뭘 하는 건지 물어보려던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진지한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깜빡 깜빡거리며 흘러가던 시간이 머지않아 0시로 넘어가는 순간, 토도로키가 미도리야를 바라보았다. 은은한 가로등 빛 아래서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생일 축하해요, 미도리야 씨.”
“아….”
“제가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거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넋을 놓고 토도로키를 올려다봤다. 차 안은 조용하기만 한데 제 귀는 너무나도 시끄럽다. 마주한 눈은 다정한 빛을 띠고 있어서 심장이 쿵쿵 뜀박질하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지금 말을 하면 백 퍼센트로 목소리가 속절없이 떨릴 것만 같았다. 미도리야는 겨우 토도로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토도로키가 살며시 웃었다. 미도리야는 고개를 팍 숙여버렸다. 얼굴이 뜨거운 게 분명 새빨개졌을 것이다. 그걸 들켜버릴까 봐 겁이 났다. 미도리야가 시선을 피하자 잠시 약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정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열을 식히고 있던 미도리야가 겨우 입을 열었을 때, 타이밍 좋게 토도로키도 말을 꺼냈다.
“저기.”
“저기.”
“아, 미도리야 씨가 먼저 말씀하세요.”
“아니에요, 먼저 말씀하세요.”
동시에 같은 말을 하는 통에 서로 먼저 말을 하라며 양보하던 씨름전의 승기는 미도리야가 가져가게 되었다. 토도로키가 볼을 긁적이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그럼 같이 가는 거죠? 패션쇼.”
“네, 네! 그럼요! 제가 영광이죠. 배우님… 아니, 토도로키 씨랑 같이 가는 거니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못 이겨 머뭇머뭇 호칭을 바꾸자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토도로키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럼 이제 미도리야 씨 차례예요.”
“아, 그… 고마워요. 축하해주신 것도, 생일 선물도…. 정말 좋아요.”
옅게 홍조를 물들이며 더듬더듬 말하던 미도리야가 배시시 웃었다. 마치 한여름마냥 해사한 웃음에 토도로키가 입가를 가리며 시선을 내렸다.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네요.”
귀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멍한 머리가 문제인 건지. 어쩐지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들렸다. 분명 자신이 잘못 들은 거겠지만,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그,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간 말실수라도 해버릴 것만 같아서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그래 놓고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자동차 옆에서 서성였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이걸 물어봐도 될지, 어떤 답이 돌아오게 될지 자신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궁금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가방끈만 만지작거리고 있자, 토도로키도 몸을 숙여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저…!”
차를 움직이려는 그를 미도리야가 다급히 불렀다. 토도로키가 창문 너머로 미도리야를 내다보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막상 불러놓고서 우물쭈물하던 미도리야가 조심스레 줄곧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그 질문에 가만히 미도리야를 바라보고 있던 토도로키가 목 뒤를 매만졌다. 눈을 깜빡이며 앞을 응시하던 토도로키가 시선을 돌려 미도리야를 다시 바라보았다.
“글쎄요. 왜일 것 같아요?”
고요하게, 하지만 빠짐없이 저를 담는 눈동자가 이상하게 깊어 보여서 미도리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미도리야를 보고 작게 웃은 토도로키가 운전대를 바로 잡았다.
“한번 생각해봐요.”
내일 봐요, 미도리야 씨. 그러고 홀연히 떠나버린 자동차를, 미도리야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아까부터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어쩐지 토도로키가 생각해보라고 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서 그랬다. 아마도, 아마도 자신과 같은….
“내일… 내일 봐요.”
미도리야가 뒤늦은 인사를 건네며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대로 전달되는 열기 탓에 손이 금방 뜨거워졌다. 내일 어떻게 얼굴을 마주해야 하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떨리는 한숨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