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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쿠는 오늘 비번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15일에 예정되어 있던 휴무일은 정부 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 일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당겨야 했다. 어쩌다 맞은 그 휴일이 생일 전날이었다는 사실은 “생일 전날에라도 하루는 쉬셔야죠.” 하고 넉살 좋게 웃는 사이드킥 덕분에 알게 됐다. 미도리야는 그저 웃고 말았다. 퇴근하는 미도리야의 뒤통수에 대고 그녀가 외쳤다. “데쿠, 생일 미리 축하해요!”

 

  14일 아침,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미도리야는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7월 14일이라는 숫자를 확인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7월 14일. 12일 다음은 13일, 13일 다음은 14일, 14일 다음은 15일인 당연한 사이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분명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생일을 고대하던 때가 있었을 텐데. 14일 다음의 15일 말고, 태어난 날인 7월 15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교복도 입지 않던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도리야가 꼭 생일을 기념하는 일 자체에 흥미를 잃은, 하루하루 더해지는 날짜가 지겨울 뿐인 사회인이 된 건 아니었다. 남의 생일에는 뭘 했더라. 겨울에 있었던 애인의 생일에는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둘 모두에게 긴급 호출이 온 탓에 4박 5일짜리 일정이 하루 하고도 반나절 정도로 당겨지기는 했지만 꽤 즐거웠다. 미도리야는 요즘도 힘들 때면 그때 생각을 했다. 생일 기념으로 발매된 애인의 피규어도 일반판이 아닌 한정판으로 구매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의 생일에는 선물을 하거나 식사를 함께했다. 유일하게 흥미를 잃은 건 본인의 생일뿐이었다는 걸 미도리야는 깨달았다.

 

  미도리야가 이번 생일에 유독 시큰둥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애인의 부재. 쇼토는 광고와 화보 촬영으로 1주일간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고, 3일 후에나 귀국할 예정이었다. 미도리야는 함께 저녁을 먹던 중 그의 출장 일정을 들었다. 초밥에 간장을 찍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무사히 다녀오기만 빌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출국일이 생일 5일 전이었다.

 

  혼자 하는 생일파티를, 당일이 아니고 생일 전날에 열어야겠다고 문득 생각한 건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였다. 이제 막 오후가 됐는데도 창밖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뜻밖의 휴일은 완전히 혼자 맞아야 한다는 걸 제외하면 나쁘지 않았다. 미도리야는 답답하게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을 치웠다. 방이 밝았다.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호기롭게 일정을 정했으면서도 침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니 생일파티 준비에 선뜻 의욕이 들지 않았다. 침실 천장에 달린 전등의 모양이나 색깔 같은 것들을 게으르게 관찰하고 있었다. 침실 전등은 원래 약간 오렌지색이 돌았었나. 위아래가 조금 더 긴 타원형인 것도 같은데. 하릴없는 상념은 결국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됐다. 이렇게까지 한가해도 되는 걸까. 전업 히어로는 몇 달 만에 얻은 하루의 휴일에 죄책감을 느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 건 인코의 전화였다.

  응, 엄마. 아니, 안 바빠요. 오늘 비번이에요. 응, 응. 조금 아까 일어나서 아침은 아직. 점심은 이제 먹으려고요. 응, 엄마는? 아, 나도 좋아하는데. 맛있었겠다. 내일은 일정이 있어서 그것만 마치고 뵈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녁 같이 외식할까요?

 

  전화가 끊어졌을 때, 미도리야의 생일 전야제 (비록 지금은 한낮이었지만) 계획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장을 보고, 맛있는 걸 해 먹고, 집을 조금 청소하고, 저번 달 도착했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여태 포장도 뜯지 못한 히어로 대백과 올마이트 편 DVD를 봐야겠다고. “모처럼의 휴일일 텐데 맛있는 거 꼭 챙겨 먹어.” 전화를 끊기 전 인코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했다. 신발을 꿰어신으면서 점심 메뉴를 정했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덥지는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근처의 마트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가 걸렸다. 모자를 푹 눌러썼고, 마스크까지 꼈다. 가츠동을 만들 재료와 우라비티를 모델로 기용해 한창 선전 중인 이온 음료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 가린 얼굴과 사복 차림으로도 히어로 데쿠임을 알아보는 시민 몇 명에게 인사를 했다. 팬에게서 하루 이른 생일 축하를 두 번 정도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처음 들어간 사무소는 집에서 꽤 멀었다. 미도리야는 사무소 근처에 혼자 살 집을 얻었다. 자취가 결정되자마자, 외식이나 즉석식품으로 식사를 챙길 것을 걱정한 인코가 요리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고 정말 매일같이 집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코의 걱정만큼 형편없는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미도리야는 몸을 쓰는 일을 했다. 식단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올마이트에게 유에이 입시를 위한 식단 리스트를 받기 전부터도 알고 있었다.

 

  전혀 다른 집의 전혀 다른 주방에서, 엇비슷한 재료와 비슷한 레시피로 만든 가츠동은 맛까지 적당히 다르고 적당히 비슷했다. 미도리야는 혼자 쓰기에는 너무 큰 4인용 식탁에서 한자리를 꿰차고 앉아 밥을 먹었다. 제법 평화로웠다.

 

  설거지를 마쳤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토도로키가 있는 미국 동부는 지금쯤이면 밤이 한창일 것이다. 짧은 라인 메시지라도 보낼까 생각하던 미도리야는 휴대폰을 소파 한구석에 던져두었다. 토도로키라면 새벽에도 일어나 답장을 할 게 눈에 선했다. 밝은 휴대폰 액정에 잘생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졸음에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애써 뜨면서. 그건 그것대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잠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아 집 청소를 시작했다. 버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잡동사니들은 모아 놓고 보니 양이 제법 됐다. 혼자 살 집으로 떠나오면서 이삿짐을 챙기던 중에도 버릴지 말지 다섯 번 정도를 고민했던 오래된 교과서는 결국 이번에도 버리지 못했다. 입어야지 생각만 했지 3년 전 산 이후로 세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 몇 벌, 고장 났지만 선물 받은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이어폰 같은 것들을 드디어 버렸다. 커다란 사이즈의 비닐봉지 하나가 꽉 찼다. 버릴 게 많았구나 싶었다. 미도리야는 쓰레기봉투가 대단히 소중한 것이라도 된다는 듯이 두 팔로 그걸 꼭 껴안고 밖으로 나섰다.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 둔 실내와는 다르게 후덥지근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문을 열기 위해 현관문 앞에 서자 낡은 승용차 한 대가 미도리야의 뒤로 빠르게 지나갔다. 수상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본업 프로 히어로, 취미 히어로 분석. 본투비 히어로 오타쿠의 본능이 말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필요한 건 히어로라고.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조용한 주택가에 어울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실 미도리야는 그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달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누굴 쫓고 있거나, 누굴 잡고 있거나, 누굴 경찰에 인계하고 있는 상황은 이제 솔직히 익숙하다. 그건 미도리야의 고질적인 버릇이자 직업병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어 승용차에서 내린 건 삼인조로, 은행 강도였다. 대담한 장소 선택이었다. 주택가였기는 했지만 어쨌든 데쿠의 사무소와 가까웠다. 하루 한 번은 꼭 패트롤을 돌던 곳이다. 이 구역의 골목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대치 상황이 생각보다 조금 길어졌긴 했어도 어쨌든 사건은 금방 종료됐다. 시간 맞춰 등장한 경찰에게 삼인조 빌런을 인도했다. 비번이었을 텐데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마침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이었다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 인사는 감사 인사로,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던 사이드킥의 충고를 불현듯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충고는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운좋게 좋은 일을 할 수 있었고, 걸맞은 감사인사를 들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은 굳이 필요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집으로 돌아갔다. 열자마자 느껴지는 집안 공기가 바깥보다 쾌적했다. 에어컨을 내내 켜 둔 채 나갔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집 바로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던 게 제법 긴 외출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소파에 앉아서 미도리야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뛰고 싸웠더니 배가 고팠다.

 

  인코가 혼을 내고 토도로키가 잔소리를 할 일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두 사람 모두 근처에는 없었으므로 미도리야는 컵라면을 끓였다. 대신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사실은 이렇게 대충 때우는 식사도 오랜만이었다. 미도리야는 보통 대부분의 식사를 사무소 동료들 혹은 토도로키와 했다. 1주일 정도 전에는 둘이 초밥을 먹으러 갔고, 토도로키의 출장 직전에는 그의 사무소 근처에 있는 소바 가게에 갔다.

 

  “같이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미도리야는 라면이 익었는지 뚜껑을 들어 확인하다 말고 며칠 전 토도로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토도로키는 오랜만에 보는, 조금 민망해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도리야의 표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밤 늦게 집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긴 하겠다, 그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제 집에 데려다주기 싫어서 같이 살자고 하는 것처럼 돼 버리는데.”

 

  면을 적시던 미도리야가 토도로키의 농담에 짧게 웃었다. 토도로키는 다시 입을 뗐다.

 

  “집에 왔을 때 네가 있었으면 좋겠어.”

 

  말투가 꽤 진지했다. 이제 민망한 기색이나, 어색하다는 듯 시선을 회피하는 일은 없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토도로키의 시선이 올곧았다. 미도리야는 이런 순간에 불현듯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했다. 고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대화의 마무리는 어땠더라. 토도로키의 출장이 끝나면 다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일종의 보류였지만 거절은 아니었다. 조금 더 기뻐하는 기색을 보일 걸 그랬다고, 미도리야는 뒤늦게야 조금 후회했다.

  오랜만에 먹는 즉석식품에서는 유난히 짠맛이 났다. 물론 맛이 없지는 않았다. 한결같은 맛일 테지만 그냥, 오늘 미도리야의 입맛에는 조금 짰다. 미도리야는 일회용 용기들을 한 번 물로 헹구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생수를 마셨는데,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을 잊은 탓에 미적지근했다.

 

  창밖은 아직 밝았다. 그러고 보면 완연한 여름이었다. 뭘 해야 좋을까. 다시 미도리야는 낮잠에서 깬 낮에 그랬던 것처럼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거실의 전등은 정사각형이었다. 침실보다는 조금 더 하얀색이 강했다. 미도리야는 한참 전 소파 저 구석으로 던져두었던 휴대폰을 집었다. 다시 토도로키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또 그만두었다. 그 도시는 아직도 새벽이었다.

  아. 올마이트 DVD. 아직 뜯지 않은 굿즈에 생각이 미치자 노곤함에 무거워진 몸을 바로 일으킬 수 있었다. 서재로 들어가 그걸 꺼내 왔다. 포장을 뜯어내는데 꼭 생일 선물이라도 뜯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미도리야 명의의 카드로 결제한 물건이었다. 기분이 좋으면 된 거라고, 미도리야는 좋을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영상의 초입은 어린 시절의 미도리야가 백 번도 넘게 시청했음이 분명한 올마이트의 데뷔 영상이었다. 이제 괜찮다. 왜냐고? 내가 왔으니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미도리야는 동의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앞으로 천 번을 더 본대도 어린 시절의 설렘은 그대로일 것이다. 미도리야는 편한 자세로 앉아 쿠션을 꾹 껴안으며 확신했다.

 

  미도리야는 가끔 일상이 꿈 같다는 생각을 했다. 꿈이 현실이 된 지는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이렇게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전부 좋은 꿈의 일부라면. 자고 일어나 보니 익숙한 집의 익숙한 천장이 있고, 교복을 입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학교로 돌아간다면. 그 일상에는 토도로키도, 올마이트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의연하기보다 상상을 하고 일순 겁을 집어먹는 게 더 쉬웠지만, 이제는 좀처럼 상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게 미도리야의 일상이었다. 상상이나, 가끔 꿈속에서 마주하는 날들 말고. 출장에서 돌아올 애인을 기다리면서, 평생에 걸쳐 동경하는 히어로의 특집 영상을 보고 있는 지금.

 

  TV 스크린에서는 이제 올마이트의 역대 인터뷰를 짤막하게 정리해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유머러스한 성격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미도리야는 프로그램 기획자가 의도했을 타이밍에 맞춰 웃음을 터뜨렸고, 문득 오늘 하루가 제법 즐거웠다는 걸 깨달았다.

  시작했나 싶었더니 곧 끝이었다. DVD의 러닝타임이 제법 짧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바깥이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거실의 불을 켜려다가, 그 대신 소파에 몸을 잔뜩 기대 누웠다. TV를 켜자마자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기로 했다. 잠이 오는 것도 같았다. 잠들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무거워진 눈꺼풀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여기서는 소금 간을 하시면 안 돼요.”

 

  (아마도 요리 프로그램의 전문가일) 남자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만드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반쯤 잠에 든 머리는 쉽게 수긍했다. 소금 간은 지금 하면 안 되는구나. 졸린 눈에는 프라이팬과 현란한 손놀림 정도만 들어왔다. 도무지 뭘 만드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접시에 뭔가를 예쁘게 담으라는 설명이 이어졌고, 패널들이 작게 탄성을 내뱉었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에서 깼다. 잠이 들기 전 틀어 두었던 요리 프로그램은 끝난 지 오래였다. TV에서는 광고가 한창이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창밖은 아주 어두웠고, 불은 꺼져 있어 시간을 확인할 휴대폰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아주 늦은 시간임은 확실했다. 미도리야는 몸을 일으켰다. 베고 있던 쿠션이 소파 밑으로 떨어졌다. 잠이 덜 깬 머릿속에 방문자 후보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도둑, 택배, 다시 도둑, 옆집에 사는 노년의 여성, 혹은 요령 없이 정직한 빌런. 꼭 아까 낮처럼.

 

  인터폰에 비친 건 도둑도, 택배 기사도, 옆집 이웃도, 어리숙한 삼인조 빌런도 아닌,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인터폰 모니터의 조악한 화질이나 형편없는 색감으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레 아침 비행기로 미국에서 돌아올 예정인 애인. 옅게 남아있던 졸음이 곧장 가셨다. 문을 열자 더운 공기가 들이닥쳤다. 인기척에 불이 들어와 현관은 일순 환해졌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뗐다.

 

  “촬영은?”

 

  토도로키가 뱉는 숨이 거칠었다.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팍이 오르내렸다.

 

  “일찍 마무리했어.”

 

  얼마간의 거친 숨결 끝에 토도로키가 대답했다. 한 걸음을 떼 반쯤 열린 현관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시선을 온전히 겹칠 수 있었다. 제법 익숙한 각도였다.

 

  “어떻게?”

 

  “애 좀 썼지.”

 

  토도로키가 마지막으로 온전히 호흡을 가다듬고 내놓은 답변은 어딘지 익숙했다. 미도리야가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 들어봤더라. 고등학생 때였나. 토도로키의 손에 들린 코스튬 가방을 받아 들고 몇 걸음을 물러났다. 집 안으로 들어선 토도로키의 등 뒤로 현관문이 닫혔다.

 

  “보고 싶었거든.”

 

  “갑자기?”

 

  얼굴이 가까웠다. 작게 웃은 토도로키는 가볍게 이마를 맞부딪혔다.

 

  “갑자기라니, 서운한 소리 하지 마.”

 

  항상 보고 싶다는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미도리야는 새삼스러울 만큼의 애정을 느꼈다. 말투가 다정했다. 한 손 가득 토도로키의 옷자락을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생일 축하도 제일 먼저 해주고 싶었어.”

 

  “아직 14일인데.”

 

  토도로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젠 아니야.”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옅게 피곤함이 묻어났다. 밝은 액정 속 시계는 00시 00분으로 시간이 바뀌었다. 문득, 정말 이유 없이 문득 피로가 밴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잠이 들기 전 같이 살자는 말을 하면서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자고 갈 거지, 쇼토.”

 

  “그럴까?”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정말 그냥 가려고 했어?”

 

  미도리야가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듯 조심스레 채근했다. 가볍게 입술이 맞닿았다. 토도로키가 허리를 감싸 안은 팔을 조금 더 당기자 입맞춤이 깊어졌다. 젖은 입술을 한 번 더 혀로 축이며 토도로키가 대꾸했다.

 

  “할 일이 많기는 해, 선물도 줘야 하고.”

 

  “선물?”

 

  미도리야는 자연스럽게 슬리퍼를 벗고 더 안으로 들어섰다. 토도로키가 미도리야를 뒤따랐다.

 

  “응, 뭔지는 아직 비밀이야.”

 

  껴안은 몸에서 여름밤 냄새가 났다. 조금 덥고, 익숙했다. 미도리야는 눈을 감았다.

 

  “생일 축하해, 히어로.”

 

  생일 전야제는 끝이 났고 이제는 15일이었다. 녹색 머리칼에 입맞춤이 남았다. 올해 첫 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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