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나의 히어로.
우리의 첫 만남을 나는 잊지 못할 거야. 아마 내가 좀 더 빨리 천국에 가겠지. 그래도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온 세상이 회색으로 변할 듯이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는데, 나는 도로에 주저 앉아 있었지.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어. 눈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은 지 며칠이 지난 상태였어. 춥고, 배고프고, 멍했어. 집에 돌아가긴 싫었어. 그 곳에 사는 사람은 항상 날 때렸거든. 친구들이 보고 싶긴 했어. 각자 다른 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얼굴은 잘 몰랐지만 항상 대화하곤 했었으니까.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감각을 뿌리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바로 그 때 한 목소리가 어, 강아지……? 하는 소리와 함께 가까워졌어. 겨우겨우 감았던 눈을 뜨자, 아주 큰 운동화가 보였어.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유난히도 선이 굵은 운동화. 나중에야 그게 빨간 색이라는 것을 알았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네가 고개를 숙였고, 따뜻한 입김이 닿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어.
낯선 집 안에서 눈을 떴을 때, 날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네 큰 눈과 주근깨가 인상 깊다고 생각한 것 같아.
“아, 눈 떴구나!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곧 놀라움과 환희를 띄고 커지는 네 눈을 마주 보며 난 안도했어. 나만의 따뜻한 안식처가 생긴 것을 느꼈거든. 그래서 그랬나? 난 ‘주인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키울까? 내일 정식으로 알아 봐야겠다. 일단 준비해야 할 게…….’ 로 시작하는 긴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다시 잠들었어.]
*
아침이-왔다! 아침이-왔다!! 아침이---
“헥헥.”
[안녕, 나의 히어로!
일어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바로 네 ‘생일’ 이라고! 저번에 네 안경 쓴 친구와 동글동글한 친구가 와서 달력에도 표시 해 뒀잖아. 난 기억한다고! 똑똑하지! 칭찬해 줘!
“으앗……. 무거워. 잘 잤어? 뽀삐야?”
그 이름은 들어도 들어도 맘에 들지 않아. 그래도 네가 정해 준 이름이니까 괜찮아. 놀러 오는 네 친구들마다 내 이름을 듣고는 무척 웃긴 하지만…….
“컹.”
어쨌든, 무사히 일어나서 다행이야! 특히 오늘은 안전하게 지킨 것 같아 뿌듯하다. 밤새 옆을 지킨 보람이 있어. 왜냐면 가장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하니까! 내가 ‘펫샵’ 이라는 곳에 갇혀 있었지만, 생일이 당사자를 기쁘게 하는 무언가를 선물하는 날인 건 알아. 네 덕에 새 집을 찾아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들었다고. 아무튼, 요 며칠간 깊은 고민을 했어. 어떻게 하면 네가 행복해 할까? 답은 곧 나왔지. 친구들! 너의 가장 큰 미소를 볼 수 있을 때는 가끔 하루 끝에 집에 와서 나를 보며 친구들 얘기를 할 때야. 오랜만에 이이다를 만났는데 여전히 멋지더라, 캇쨩은 꽤 어른스러워졌더라……. 이런 말들을 할 때 얼굴이 정말 환해져. 가끔씩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는, 그날은 밤 늦게까지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지. 그래서 오늘 난 네가 외출한 틈을 타서 네 친구들을 모을 거야. 내 코는 아주 좋아서, 우리 집에 왔던 친구들의 냄새를 다 기억한다고! 총 5명이었어.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되겠다.]
*
“……. 그럼 뽀삐야, 나 없는 동안 집 잘 지키고 있어야 돼?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다녀와서 맛있는 간식 줄게. 일찍 들어올게!”
앗, 나갔다! 나도 빨리 나가야지. 난 똑똑하니까 도어락 여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야. ……열었다!
난 바로 나와서 길거리에 섰어. 어디부터 가야 할까……? 일단 맨날 산책 나갔던 공원으로 가 보자. 어, 희미하지만 냄새가 나. 분명 제일 최근에 왔던 동글동글한 사람이야! 분명 이름이 우라라카였었지.
얼른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아앗, 저기 있다! 헥헥대며 그쪽으로 달려가서 앞을 막고 섰어. 뭐 해? 나랑 같이 우리 미도리야네 집에 좀 가줘!
“왕왕!”
“아이고, 깜짝이야! 뭐꼬? .......앗, 너 데쿠네 개뽀삐 아니니?”
“헥헥.”
날 따라 와! 내 말 잘 알아 들었지? 말을 마치고 휙 돌아서서 걷자, 잠시 망설이던 우라라카가 나를 따라서 발걸음을 옮기는 게 느껴졌어.
“무슨 일이고 이게....... 혹시 데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필 오늘 휴대폰을 두고 나와서는! 에잇, 일단 따라가 보자.”
집에 오는 동안 너무 흥분했나 봐. ‘헉, 문이 열려있잖아? 도둑이라도 든 거야?!’ 하고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가는 우라라카를 두고 물 좀 마시고 다시 집을 나섰어.
아까 전에 갔던 길로 돌아가자마자,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었어.저번에 우라라카와 같이 왔던 안경을 쓴 남색 머리의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어!
“분명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우라라카,연락도 되질 않는군.설마…….”
늦잠인 건가?!혼자 턱을 괴고 혼잣말을 하다가 갑자기 팔을 파닥거리는 저 사람.이이다가 분명해!멍멍! 난 바로 달려가 이이다의 옷자락을 물고 끌어당겼어.
“어엇!강아지야!이러면 안 돼!옷이 늘어난단 말이다!”
그렇다면 더욱 놓으면 안되겠군.이이다는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왔어.생각보다 순조로웠어!
“여기는 미도리야네 집인데!헉,혹시 정말 뽀삐였던건가?크윽,어쩐지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잃어버렸던 거니?뽀삐야!!정말로 똑똑하구나!!’ 갑자기 감동받은 듯 나를 향해 팔을 휘적거리는이이다를 그대로 대문 안으로 밀어 넣고 난 뒤를 돌았어.다음 타겟을 찾으러 가야지.
“뽀삐야!어디를 가는,어?우라라카??”
“이이다??? 왜 여기 있는겨!!”
다음은 내가 아주 잘 아는 미도리야의 친구, 캇쨩을 잡을 차례야.산책 갈 때미도리야가 자주 캇쨩 집 앞을 지나가거든.가끔가다 집 앞에서 운동하는 캇쨩을 마주치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풀이 죽지만,그래도 미도리야는캇쨩이 좋은가 봐.미도리야가 좋으면 나도 좋아!쫄래쫄래 캇쨩의 집 앞으로 가 보니,마침 캇쨩이 나와서 붉은 머리의 친구에게 투덜대고 있었어.난 너무 반가워서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어.
“가야 한다니까,바쿠고.”
“그러니까,내가 거기에 왜 가냐고,악!”
“바쿠고!괜찮아? ……그런데어디서 온 강아지지?무지 귀엽다!!”
“이 자식뭐야!데쿠네 개 아냐?”
“아,그 뽀삐?우왓,엄청 귀여워!!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컹.”
날 따라 와!나는 내가 갑자기 튀어 오르는 바람에 놀라서 넘어진 바쿠고의 신발 한 짝을 물고 냅다 달렸어.어엇,뽀삐야,어디 가!하는 붉은 머리 친구의말에 이어 내 신발!!저 자식 잡아! 하며 달려오는 캇쨩의 발소리가 들렸어.왕!갑자기 경주하는 기분이 들어 전속력으로 달렸어!나는 어엿한 개가 됐으니까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야.
신발을 대문 앞에 던져 두고 마지막 인물을 찾으러 나섰어. 이 사람도 아주 잘 알아.가끔 서로의 집에 찾아가서 놀다 가거든. 그리고 나랑도 잘 놀아 줘!통하는 게 있나 봐.바로 토도로키야!난 이번엔 아예 토도로키네 집으로 찾아갔어.가는 김에 거기 사는 고양이 친구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토도로키는 고양이 친구를 키우는데,아주 재미있는 친구야. 저번에 엉덩이 냄새를 맡으려다가 할퀴어진 적이 있지만…….
이 골목만 돌면 토도로키네 집이다!
“멍!”
앗,골목을 돌자마자 코너를 돌던 토도로키와 부딪혔어.
“얼.”
“왕왕!”
“뽀삐……?”
“헥헥.”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던 토도로키가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어.역시 별 말 없이도 우린 통한다니까.
*
토도로키와 함께 걸어서 집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내가 데려 온 친구들이 문 앞에 모여 얘기를 하고 있었어.
“이놈의 멍멍이가 내 신발을 물고 갔다고,망할!”
“데쿠네 집 문이 열려 있던 거 있지? 깜짝 놀랐어…….”
“뽀삐진짜 귀여웠어!”
“그건 맞지만,내 옷을 물어뜯으려고…… 앗,뽀삐다!”
“토도로키도 왔어!”
“오,다들 안녕.”
“토도로키,여긴 어떻게 왔어?”
“그냥 뽀삐를 따라 왔는데.”
“야,이 멍멍아.반쪽이까지 데려오다니 대체 무슨 속셈이야.아앙?!”
“바쿠고!강아지한테 왜 그래;”
“동글이는 좀 빠져!”
“어휴…….”
내 얘기인가?나랑 놀아 줄 건가?행복해! 같이 놀면서 미도리야를 기다리자.내 꼬리가 사정없이 흔들렸어.
“다들 진정해!일단 미도리야를 불렀다.이리로 오고 있대.”
“켁,양반은 못 되는군.”
“얘들아!”
앗,미도리야다!너무 반가워서 나는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어.헉헉대며 달려 온 미도리야는 나를 안아 들며 말했어.
“얘들아!헉헉……. 우리 뽀삐가너희들을 여기로 데려 왔다고?분명 문은 잠갔는데…….”
“그래,이 너드 자식아!무슨 속셈인지 당장 말해.”
“어엇,캇쨩……. 아무 속셈도 없는데…….”
“일단 미도리야가 여기로 왔으니까 다른 애들도 이곳으로 불렀어.오고 있대.”
“응,일단 우리가 예약해 둔 파티룸은 취소했어.”
“음, 그럼 어떡할까?지금 시간쯤엔 장소가 딱히 없을 텐데.”
“얘,얘들아. 그럼 이렇게 된 거 오늘 우리 집에서 놀지 않을래?어제 우리 집 청소해서 깨끗한데…….”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어.응?내가 친구들을 모은 건데……. 다른 애들도 오고 있다고?
“컹…….”
뭔가 실수한 것만 같은 기분에 잠깐 얼어붙자,나를 안고 있던 미도리야가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왔어.
“우리 뽀삐가어떻게 나왔을까?궁금하네…….”
그 때,멀리서 얘들아,하는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이 다가왔어.친구들과 미도리야도 친근하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친구인가 봐!
“미도리야! 무슨 일이야?갑자기 집 앞으로 오라니……. 전화로 대충 설명은 들었다만.”
“그래,이이다 말로는 뽀삐가 옷을 물어 뜯을 뻔 했다는데?”
“앗,오지로,카미나리!내가 문단속을 잘 못하고 가서 뽀삐가 잠깐 탈출했나 봐.으아……. 정말 미안해,다들!우리 집에서 놀자.내가 열심히 대접할게!”
“괜찮다.미도리야.결국 이렇게 모였잖아.”
“그래!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서 집들이 한 것 이외에는 다 밖에서 만났는데,오랜만에 미도리야네 집도 들어가 보고 좋지!”
“토코야미,미나…….”
“헉……. 미도리야 표정이 이상해졌어!”
“눈부셔서 그래,눈부셔서.”
*
이럴 게 아니고 당장 들어가자는 미도리야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 집은 금세 시끌벅적해졌어.나도 괜히 신이 나서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녔지!이리저리 예쁨도 받고 아주 좋았어.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다 같이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자,나는 미도리야의 옆에 가만히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었어.
“이렇게 있으니까 꼭 학교 다닐 때 같네.”
“그러게,개굴.기숙사에서 다 같이 놀던 때가 생각 나.”
“너무 재밌다!뽀삐 덕분에 이런 즐거운 체험도 해 보고!”
“저도 동감이에요.”
“저,그런데 뽀삐는 대체 어떻게 나온 걸까?애들한테 찾아가서 한 일들은 다 뭐고.”
“그러게.이렇게 얌전하게 있는 걸 보니 사고를 내려고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저기……. 내가 뽀삐랑 한 번 대화해 볼게.”
“아,코지의 개성이 있었지!”
“좋다.뽀삐의 속마음도 알 수 있고.”
코지라는 친구가 나를 향해 다가와 [작은 동물이여]로 시작하는 말을 중얼거렸어.헉,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당연히 말해 주지!너무 자랑스러워!
*
“으으으…….너무 귀여워!”
“결국 뽀삐가 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거네?”
“맞아.미도리야가 행복해지길 바랐대.”
“너무 감동적이다.”
“…… 데쿠 자식.”
미도리야네 친구들이 코지가 해 준 내 얘기를 듣고는 저마다 칭찬을 해 줬어!너무 뿌듯해.물론 친구들이 바깥에서 생일 파티를 하려 했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지금 나를 붙잡고 거의 울 듯이 감동하고 있는 미도리야를 보니 후회는 없어.게다가 나도 같이 생일파티에 참여하게 돼서 더 좋다는 얘기를 듣고 나선 폴짝폴짝 뛰었어.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그래,개굴.미도리야.생일 축하해.”
“다들 고마워!”
잘 가!재미있게 놀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을 보내고 미도리야는 내 이름을 불러 주면서 날 껴안았어.우엑,술 냄새!
“뽀삐야…….너무 고마워.널 만나고 하루하루 행복해…….”
“헥헥.”
“항상내 옆에 있어줘야 돼.넌 가장 큰 선물이야…….”
“멍!”
앗,잠들었다.침대에서 자야 되는데!얼굴을 핥아봐도 미동이 없어.하는 수 없지.오늘은 여기서 지켜야지.웃는 얼굴로 편안하게 자고 있는 미도리야를 마주 보고 누워 나도 눈을 감았어.잘 자.미도리야.
[안녕,나의 히어로.
이게 오늘 내가 준비한 선물이야.어때?물론 넌 엄청 좋아했지.너무 기뻐.
난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안 그래?내가 처음으로 너에게 선물을 준 날인데.물론 넌 항상 나에게 선물 같은 기쁨을 주지.첫 만남부터 아마 이별까지 하루하루 특별하고 소중할 거야.널 만난 뒤로 난 매일이 행복하거든.덕분이야.히어로.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할게.
생일 축하해,미도리야!]